제게 처음으로 말씀이 역사하신 은혜는 산상수훈의 팔복이었습니다.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납득이 되었다기 보다는 주께 처음으로 저의 기준을 내어 드렸고 주께서 저의 혼란한 주관을 대신하는 하늘의 화평을 주셨습니다. 당시 써놓았던 저의 메모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욕구불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우울증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호구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참견충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찐따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결벽증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오지랖퍼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관종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3-10)
정말로 진지하게 성경과 저 메모를 꺼내두고 납득시켜 달라고 며칠은 기도했었습니다. 고상하고 거룩한 척을 해야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진솔한 내 생각을 말씀 드려도 사랑으로 품어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당시 섬기던 교회의 목사님이 농담을 자주 하시진 않았는데 그 날은 어떤 농담을 예시로 들었었습니다. 개미가 코끼리 등위로 올라가 하는 말이 "이걸 밟아 죽여?"라고 했다는 오래된 조크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말씀에 대항한다면 그 조크보다도 훨씬 더 어이 없는 일이라고 하셨었습니다.
여덟 가지 중 몇은 제가 살면서 제 평판과 체면을 위해서 가끔씩 열심을 내어본 적이 있었는데 도저히 할 일이 못되며 득보다 실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결론을 내렸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주께서 주셔서 주께 드리는 순종으로서의 행위는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해주셨습니다.
어떤 유튜브 숏츠에서 김용의 선교사님이 간증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데 죽음과 부활이 없다면 무익한 간증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팔복의 말씀에 은혜를 입은 기적은 영적 원시인이던 저의 옛 자아가 죽고 예수님께서 저를 일으켜 걸음마를 떼게 하신 사건이었습니다.
https://youtu.be/kcVOYz37LkQ?si=m2e9xwJ5Tv3CES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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