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라디아서 5:2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한일서 4:7-13)
사진은 어제 교회 카페 앞에서 촬영한 꽃창포입니다. 꽤 여러 촉을 심었는데 떠내려 가기도 하고 죽기도 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길러 주신 두 촉만 살아 남은 듯 보입니다. 우리 교회 많은 분들이 볼 수 없겠지만 제 눈에는 너무나 잘 보입니다. 내일부터 있을 BTD에서도 제가 이름 놓고 기도한 형제자매님들도 선명히 보이리라 기대합니다. 제가 땀 흘려 심고 길렀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과 같이 한 일이기에 주님이 보여주시는 신비와 사랑이라고 여겨집니다. 주님이 우리 교회와 한국의, 세계의 성도들을 부르시고 기르심은 풀이나 꽃을 자라게 함 보다 얼마나 더 세심하고 정성을 들이시는지 가히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저와 같이 무익한 자에게도 이렇게나 크고 많고 다양한 은혜를 주시는데, 다른 형제자매님들께도 각자에게 최상 최고의 은사를 베푸실 것을 기대하며 찬양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린도전서 13:4-8)
죄 또는 회개, 천국 등의 기독교 용어가 아직 믿지 못하는 장래의 형제자매 후보님들께 상당히 왜곡되어 있듯이, 사랑이라는 기독교 핵심 단어 또한 심각하게 뒤틀려 있습니다. 1년 중 피임도구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이 성탄 전일인 것이 그 예입니다. 그 현상에 대하여 제가 감히 판단하고 정죄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너무나 안타깝고 아쉽게 느껴집니다. 주님은 잘못된 일을 찾아내어 분노하고 심판하시려는 독재자나 폭군 같은 분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너무나 주고 싶어 하시는 인자한 아버지이심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자식 간이나 부부 간에는 사랑이 있어야 마땅하지만, 실제로는 서운함과 아쉬움으로 시작되어 부정적인 감정으로 발현되는 사건들이 서로를 갈라 놓는 일이 많습니다. 제가 하나님 아버지께 왜 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시냐 따지기 전에 제 중심에 얼마나 주님을 모시고 있는지, 이런저런 변명과 핑계로 게으르고 나태한 모습을 보이는지를 생각하면 주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임을 통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긍휼이라는 오래된 단어도 사랑과 자비를 말할 때 자주 사용되는데, 제가 느끼고 받은 긍휼의 느낌은 짠함에 가까웠습니다. 장년층들은 잘 알고 있는 '나 홀로 집에'라는 영화의 '맥컬리 컬킨'이라는 아역배우가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의 큰 성공으로 순탄치 못한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떤 이는 안타까워 할 것이고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방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우의 부모가 물욕에 눈 멀고 너무나 경우가 없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가요? 그것을 잘 알 정도로 가깝기도 하고 도와줄 능력도 충분하지만 직접 나설 수는 없는 인자한 친척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제가 하늘님 땅님 천지신명님은 찾고 원망하되 하나님, 예수님은 절대로 부르지도 찾지도 않아 나서지 못했던 주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좋은 시절을 많이 낭비하고 상한 몸과 마음으로 성전에 왔지만 여전히 왕된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때, 주님은 엄벌이나 꾸중을 주지 않으시고 너무나 따뜻하고 애잔한 마음으로 좋은 선물을 주고 싶어 안절부절하시는 마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불쌍해 하는 마음은 있되 동정은 아니었습니다. 지혜와 지성과 부와 권력을 모두 갖춘 최고의 권세자가 몸과 마음이 다친 죄수나 거지에게 갖을 법한 그런 동정 같은 감정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왜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으나 너무나 온전하고 인격적으로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셨습니다. 지금까지의 네 잘못이었으니까 달게 받고, 복종하고 충성하라는 강압적인 모습도 전혀 없으셨습니다.
제가 주님께 사랑을 더 갈구한다고 하더라도 주님은 저를 아끼실 것을 '압니다.' 제가 받은 큰 사랑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전하려고 하면 너무나 기뻐하실 것을 '압니다.' 나누고 전하려다 힘에 붙여 눈물을 흘린다면 실망이나 멸시의 시선이 아닌 격려와 응원을 보내시리란 것을 '압니다.' 너무나 직접 도와주고 싶지만 같이 함께 만들고 싶어 참으실 주님의 아름다운 배려를 '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