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사도행전 2:1‭-‬4)

성령의 시선과 마음을 잠시 거두고 세상 인간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부자와 궁핍한 사람은 서로 어울리기 힘듭니다. 동호회를 가봐도 초보와 고수가 어울리는 경우는 드물고 일정 수준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초중고 동창회에서나 옛 추억으로 인해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사람들이 가끔은 모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가 경험한 교회란 곳은 기적과도 같은 공간입니다. 직분이 있을지언정 그것이 공동체 내 신분의 높고 낮음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흔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직분과 사회적 신분이 높은 분이 종교적 위신도 세우고 거드름 피우러 가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높으신 분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분들께 접근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도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오래 되고 장성한 자도 믿음이 나약한 자와 얼마든지 기꺼이 즐겁게 교제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익숙한 형제자매님들은 당연하게 받아 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말도 안되는 기적 같은 일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꽤 큰 회사의 꽤 높은 자리에 계셨습니다. 아버지라는 멍에와 아들이라는 특혜가 없었다면 대화 한 번 나눌 기회도 없었겠지만, 너무나 많은 기회가 있던 탓인지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 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혈육 관계도 이런저런 이유로 갈등이 너무나 쉽게 생기고 아무는 것은 힘들고 오래 갑니다. 그런데 생전 모르던 사람들끼리 헌금을 하고 서로 청소나 필요한 사역도 하면서 서로를 격려합니다. 모임이라는 것은 대개 원래 각자의 의무와 권리를 정하고, 힘든 의무는 번갈아 가면서 하되 권리를 좀 더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해서 조직이 발전과 쇠퇴를 하지 않던가요? 그에 반해 교회 공동체는 거의 자발적인 활동과 참여로 이루어 집니다. 이익과 수익 배분이 목적인 경제 조직과도 다르고,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 모임과도 다르며, 사회적 가치 실현을 추구하는 사단법인과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이천년간 유지, 확산된 것은 터무니 없는 기적에 가깝다고 판단됩니다. 

다시 성령의 시선과 마음을 빌려 교회를 보고 나와 주변을 살펴 보면 왜 교회가 예수님이 머리 되시고 저와 우리를 그 지체라 하시는지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 건물이 있는 교회의 높은 직분을 가져야만 귀히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빈곤과 핍박이 사무치는 곳을 가야만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기적의 공동체 교회의 최우선 목적은 예배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예배의 의미는 주님을 만나 우리가 자녀 되어 죄사함 받은 것을 기뻐하며 경배 드리는 하늘나라의 리허설이자 훈련입니다. 그렇기에 더 화려하고 더 많은 사람이 해야 좋은 예배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복음 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