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로마서 15:15)
성령충만이라는 상태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을 받은지 5년이 되지 않은 저와 같은 사람이 경험했거나 예상하는 성령충만의 상태와 뛰어난 영적 지도자가 말하는 성령충만의 상태는 다를 것입니다. 종교전쟁을 일으켰거나 신대륙 원주민의 노예 사용이나 학살을 묵인했던 종교지도자의 성령충만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려다 순교한 선교사들의 성령충만도 당연히 다를 것입니다. 권위와 권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인정하는 바이므로 과거나 현재를 비판할 의도는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 정상적으로 여기던 사고 방식이 미래에는 어떻게 평가 받을지 저 또한 알 수 없습니다. 현대의 기독교를 암흑기라 표현하고 신도들이 참으로 강퍅했다고 평할 것 같지만 그 책임을 현대의 지도자들에게 떠넘길 생각도 없습니다. 후대에 이 시대나 제가 어떻게 평가를 받는지 보다 주님이 지금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저는 과연 주님을 잘 모시고 살아가는지가 더 다급하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하심을 표현할 때 난감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를 오래 열심히 한다고 확실히 응답을 주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충 마음가는대로 생활하면서 주님이 그렇게 이끄셨다고 둘러댈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하게 여기고 열심으로 기도한 것은 응답을 알 수 없고, 사소한 일로 여기던 일은 완강하게 응답하실 때도 있습니다. 물론 나는 버림 받았나 싶은 생각이 들도록 응답을 알 수 없는 기간도 꽤 됩니다. 또 교회의 일이라도 선한 중심으로 따르지 못할 때도 있고, 세상의 일을 하면서도 주님의 지혜와 도우심을 간청할 때도 있습니다.
임재를 느끼든 그렇지 못하든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잘못된 일을 찾아내어 혼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지켜 보호하시고 이끌어 주시기 위해 지켜 보십니다. 아이가 어떤 결정을 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간섭하지 않고 지켜만 봐야 할 때도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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