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신비를 체험했고 은사도 넉넉하여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외선교를 지원하고 준비하는 중, 신대원 진학을 소망했던 일을 떠오르게 하셨지만 어이 없는 웃음으로 넘기려 합니다. "주님, 저 올해는 시간도 돈도 안돼요ㅎ 부르시는 건지 내가 그냥 가고 싶은 건지 구분도 안되니까 지원서 내보기나 해볼게요. 등록금 마련 안되면 선교까지에요. 주님이 등록금 해결해 주시면 다녀 볼게요." (상황은 보긴 하겠지만 대략 지원서만 내고 안 갔으면 좋겠다는 뜻)
그 후 선교를 위해서 진학을 위해서 계획을 짜면서 지쳐만 갑니다. 미련한 자의 계획으로는 선교에서 담당하게 된 미디어 장비를 좋은 걸로 사고 싶었지만 등록금 걱정이 됐습니다. 친분있는 권사님들 경조사도 있었지만 몸도 마음도 상황도 좋지 못하게 흘려 보냈습니다. 미달의 경쟁률인 이상 면접관이 트집을 잡거나 어떤 행정적인 착오로 떨어지기를 은근 바랐습니다. 그러면 시간 여유도 재정상황도 여유로울 것 같았고 지원을 한 이상 제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은 식어가는데 일찍 나간 교회 화장실은 왜 그렇게 또 춥고 쓸쓸할까요.. "등록금만 아니었으면 교회 화장실에 비데 설치하고 그랬을텐데요~ 선교지에 선물도 잘 챙겨 가고ㅎ" 그때 주님은 "등록금은 내가 해결해 준다니까? 등록금 걱정 말고 그냥 하면 좋을텐데.." 라고 하셨지만 "네네, 등록금 해결 안 해주셔도 계산해 보고 여유 되면 할게요." 라고 넘어 갑니다.
그리고 합격자 발표가 되었고, 등록금 고지서도 나왔습니다. 총 500만원 정도를 예상했지만 다행히 등록금 약 300에 입학금 약 100만원 총 400만원 정도입니다. 장학금 신청안내를 보니 100만원인데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학자금 대출을 살펴 보는데 가능할 것 같습니다. 주님이 약속을 지키시는가 봅니다. 확보했던 등록금이 학자금 대출로 굳으면 선교지에 괜찮은 장비를 사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자금 대출은 그래도 내가 부담을 지는 거니까 "내가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결단으로 가자"라는 마음을 먹으려 했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 교회의 권사(진)님께서 전화로 축하 인사와 함께 주님께서 도와주라고 하셨다 합니다. 명백히 기쁘고 감사 드릴 일인데 제게는 죄책감이 컸습니다. 등록금 걱정과 핑계로 여기저기 인색하게 군 것도 죄스러웠고 기도 응답을 누차 흘려 들으며 주님의 행사 방법을 무시했던 것도 죄스러웠고 신대원을 부름으로 가든 결단으로 가든 합격을 하든 안하든 주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닐텐데, 내가 원한 모습을 보이시기 전까지 믿지 않는 도마와 같은 믿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선교를 준비한답시고 내 생각으로 도구나 고르고 고민하고 부족한 상황을 원망하던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비데를 "속죄제물" 겸 (등록금의 십분지 일 가격이라) "십일조"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믿음 없음을 용서해 주세요..." 기도가 막힙니다.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서원예물"로 여기고 기도 드립니다. "비데처럼 추운 날은 따스함으로 맞이해 드리고 말 못할 아픔과 더러움은 은밀히 씻어 주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교회 성도들이나 진학할 신대원 학생들의 장학금을.." 여전히 막힙니다. 공중에 흩어집니다.
다시 기도 드려 봅니다. 회개를 "후회, 반성, 자책" 등등과 구분하는 수준은 됐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여전히 제 의지, 감정, 방법, 입장을 고수합니다. 여전히 부르짖는 기도는 어렵고 이유나 원리도 모르겠지만 순종해 봅니다. "주여! 주여..!! 주여..!!! 감사합니다....?!!" 아.. 진심 어린 한 마디와 돌이킴, 관계의 건강한 회복을 기다리셨나 봅니다.. 다음 문장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주여!! 사랑합니다..!"
신약시대에 구약의 제물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말도 들어봤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이 용서를 할 때는 비슷한 실수, 비슷한 피해, 비슷한 친분이나 반성 정도라면 비슷한 댓가나 사죄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죄"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각각의 죄인에게 필요한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그렇기에 죄인은 용서하는 분이 원하는 회개를 해야 하고, 구약의 제물은 좋은 참고자료가 되는 것 같습니다. 구약시대에나 은혜의 신약시대에나 제물과 예물의 방법이나 형식 보다는 그 마음의 중심이 가장 중요함은 분명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2)) 주님은 자녀가 귀한 제물을 바치고 재정적 곤경에 빠지는 것을 즐기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물을 바치고 남들과 구별된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도 않으십니다. 주님은 나와 나의 것을 내려 놓고 주의 안에 거하기를 갈망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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