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한복음 3:1-8)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태복음 13:1-23)
오늘의 본문 이후에 나오는 겨자 씨앗의 천국에 대한 비유를 위해 겨자를 심었는데 아쉽게도 사진 사용이 불가할 정도로 실패했습니다.. 씨앗이 말라 죽을까봐 강하지 않은 햇볕에 두고 습하게 유지를 했더니 무순처럼 웃자라 버렸기 때문입니다. 고난이나 핍박이 없다면 주의하라는 말이 제가 키우려던 겨자를 보니 수긍이 갑니다.
반면, 말라 죽은 줄 알고 포기하고 다시 심어 보려던 고수는 보름만에 싹이 많이 보입니다. 고수는 우리나라 음식에서 대파가 쓰이는 것 보다도 더 많이 활용되는 동남아의 주요 향신채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들 뿐더러 가격이 싸지 않습니다. 잘 자라서 우리 교회 주변의 이주민 형제들에게 나눔할 수 있는 기쁨이 충만하길 소망합니다.
거듭남의 대표적 열매는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된다는 점인 듯 합니다. 기독교적 나눔은 무조건적, 일방적이고 절대적 사랑인 아가페로 대표됩니다. 모든 인간이 아가페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주께 쓰임 받음과 그 마음 주심을 느끼는 은혜가 풍성하시길 기도합니다. 나보다 못 사는 사람이나 상황 형편이 안 좋은 사람을 위로하며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안심을 얻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 것이 은혜라면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은 기쁨을 누리고 살아야 논리적으로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큽니다. 남는 돈, 남는 시간, 남는 마음을 쓰며 남들보다 풍족함을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저 같이 개인주의적이고 편협한 죄인이 주님께 사용되며 마음을 전달 받는 것은 기적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로마서 7:18)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이사야 43: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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