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제목하나님의 숨결 230528(고린도전서 5:9-13, 공동체의 크립토나이트 깨기)2023-05-2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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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린도전서 5:9‭-‬13)


어제 묵상의 '교회의 성령 안에서 필요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라는 끝맺음과 대비되게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라고 오늘의 본문이 마쳐집니다. 기록된 바 내어 쫓으라 하였으니 내어 쫓으면 편할 것 같습니다만, 그것이 정녕 최선일까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과는 또 다른 말 같이 느껴집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마태복음 18:21‭-‬22)


개인 신자는 490번이라도 용서하되 교회 공동체는 원 아웃으로도 신자 자격을 박탈하여 거룩함을 유지하라는 뜻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저는 이 글쓰기는 일단 멈추고 저를 내쫓지 말아달라는 구구절절한 탄원서를 써야 맞습니다. 물론 그 전에 범죄한 손과 발과 눈을 떼거나 빼지 않았다는 회개와 탄원도 해야 합니다.


다른 분들도 죄 조금씩 짓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좀 더러워도 받아주십시오. 서로 좋게 좋게 경건한 척 살다 예수님 계신 천국까지 어떻게 좀 슬금슬금 가봅시다라고 말씀 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런 껄끄러운 사람이 생기면 굳이 제 귀나 입, 손이 더러워지기 전에 직분자나 사역자분들이 잘 좀 처리해 주셨으면 하고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다니는 작업현장에는 15명의 사람이 있고 그 중 두 사람이 4-5년차인데 일을 못하기도 하고 농땡이를 칩니다. 그리고 어떤 다른 한 사람은 한 주에 3일은 오후 조퇴 후 투석을 받고, 그 때문에 육체적 작업을 거의 하지 못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은 아픈 사람은 동정하고 이해하는 한편, 일을 못하는 두 사람은 미워하고 내쫓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저는 형제를 미워하지 말아야 하기에 방관합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욕을 하기에 굳이 제가 보태지 않아도 되고,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면 성격 좋은 신입으로 보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씀을 따라 욕을 하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기뻐하실 것 같다는 기대는 커녕 경외함으로 주님의 지혜와 긍휼을 바랍니다. 몸이 아파 일을 못하는 자나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모자라 일을 게을리 하거나 작업 실적이 떨어지고 관계가 서툰 자 모두 주님의 은혜가 간절히 필요한 자들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로마서 1:14)


제가 예수님께 만 달란트를 빚졌지만 은혜로 대속 받았기에 백 데나리온의 빚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는 준엄하신 명령을 저는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요?


죄를 숨기며 교회 안에서 숨어 버티는 것은 주님께서 슬퍼하실 일입니다. 형제를 내쫓는 일 또한 교회의 흠 뿐만이 아니라 머리 되신 예수님의 치욕이기도 하므로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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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우리 교회 주차장 담장 넘어에 있는 뽕나무,그 열매 오디(오늘 촬영)와 박태기나무입니다. 두 나무가 바로 이웃하고 있어 가장 첫 사진에는 박태기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옛 성경에는 삭개오가 오른 나무를 뽕나무로 표현했지만 돌무화과 나무로 정정되었습니다. 박태기나무는 봄에 튀밥 같이 생긴 보라색 꽃을 맺는데, 밥티나무라 부르는 지방도 있다고 합니다. 꽃 사진은 찍어 둔 게 없어 다른 참조 사진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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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기나무의 별칭은 유다나무입니다. 가룟 유다가 목을 메어 죽은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교회 옆에 있는 게 불길하게 느껴져 베어 없애자고 고광문 목사님께 건의 드리기도 했습니다. 만약 박태기나무를 베었다면 세상에서는 크게 문제 없는 자를 교회가 내치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광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영광이 압도적으로 큽니다. 오늘의 본문이 나온 이유는 그 앞 부분에 있다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린도전서 5:2)


만일 누군가를 품지 못한다면 통한히 여겨야 합니다. 사람의 죄를 통한히 여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아는 은혜가 부족한 것을 안타깝게 느껴야 합니다. 죄를 지은 형제가 교회에 공이 컸든 성도들간의 관계가 활발했든, 죄를 지은 형제를 내쫓으며 자신의 손과 발과 눈을 내어 찍는 심정을 느끼라는 지시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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